더지 플라자(Deji Plaza)
어떤 공간은 그 기능 이상으로 인간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난징의 더지 플라자 화장실이 그렇다. 화장실이란 보통 가장 사적인 장소이면서도 가장 공적인 공간이다. 누구나 사용하지만, 누구도 오래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 곳.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지는, 그러나 결코 조명을 받지 않는 공간.
하지만 더지 플라자는 이 오래된 개념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기능적 공간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화장실을 보러 간다’는 발상은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해한다. 더지 플라자의 화장실은 단순한 생리적 해결의 공간이 아니라,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을.
1동 2층 화장실에 들어서면, 마치 펄프 픽션 속 한 장면 같다. 자동차 좌석을 활용한 의자가 놓여 있고, 벽면에는 조명 아래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골프공들이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 마그리트의 골콩드(Golconda)이나 워홀의 캠벨 수프 캔(Campbell's Soup Cans)처럼 단순한 형태가 나열되면서도 묘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상할 정도로 친숙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 그 경계 어딘가에 걸쳐 있는 공간이다.


3층에서는 분위기가 또 한 번 바뀐다. 메탈릭한 벽과 네온 조명이 빚어내는 사이버펑크적 미래 도시. 물이 흐르는 소리조차 인공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SF적인 공간이다. 블레이드 러너 속 어느 뒷골목에 잠시 들어선 듯한 이곳에서는 화장실이 아니라 미래를 경험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4층은 절제 속에서도 장식미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일본식 미니멀리즘처럼 극도로 비워낸 것은 아니지만, 색과 형태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강한 인상이 있다. 하얀 벽과 검은 바닥, 그리고 그 대비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강렬한 빨간 의자. 한가운데 놓인 소나무는,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 어떤 조직의 보스가 조용히 앉아 있을 법한 공간처럼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단순하지만 강렬하고, 여백이 많을수록 오히려 존재감은 더욱 선명해진다.


6층에서는 전혀 다른 접근이 펼쳐진다. 유기적인 곡선과 기하학적인 패턴이 조화를 이루는 이 공간은, 토마스 헤더윅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과 구조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디자인은, 기능적 공간을 예술적 탐색의 장으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8층. 이곳은 이 건물에서 가장 단순한 공간이다. 올 화이트 톤의 벽과 바닥,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최소한의 조형물. 벽에서 튀어나온 조각들이 조용히 시선을 붙잡는다. 한쪽에는 봉화를 든 여천사, 반대편에는 생각하는 사람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는 요소가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이곳만의 차분한 조형 언어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곳은 건물 안의 아트 뮤지엄과 연결된 화장실이지만, 역설적으로 더지 플라자 내에서 가장 담백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조각과 여백만으로 만들어진 풍경.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는 듯하다.
기능만을 중시하는 시대에는 이런 발상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밀란 쿤데라는 무의미의 축제에서 여성의 배꼽을 ‘육체의 가장 사소한 지점이 얼마나 결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의 소재로 삼았다. 배꼽은 신체의 중심이지만, 실용적인 기능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육체의 미학과 존재의 신비로움은 더욱 부각된다. 나는 더지 플라자의 화장실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공간, 그러나 그 누구도 아름다움이나 감동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그곳이, 이제는 경험과 탐색의 장소가 되었다.
화장실이 단순한 위생 공간이 아니라 감각적 경험의 장이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적 혁신이다.
더지 플라자의 화장실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선언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공간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깃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선언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틀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더지 플라자 2층 화장실: Archello
• 더지 플라자 3층 화장실: XL MUSE
• 더지 플라자 4층 화장실: Archello
• 더지 플라자 5층 화장실: Archello
• 더지 플라자 6층 화장실: Archilovers
• 더지 플라자 8층 화장실: Designboom
• 앤디 워홀, 캠벨 수프 캔: MoMA
• 르네 마그리트, 골콩드: René Magrit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