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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것이 아닌 타고 노는 것 - 노구치의 예술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이사무 노구치의 대리석 미끄럼틀 “Slide Mantra”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사무 노구치는 190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로, 다양한 스타일과 소재를 통해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넓혔다. 그는 형태와 기능,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예술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다.
노구치는 작은 디테일에도 진심을 담아냈다. 미끄럼틀 아래 톱밥의 색깔과 질감까지 고집스럽게 다듬기를 원했던 그의 집요함은, 그의 예술에 대한 진정성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아리조나의 수용소에 자진해서 들어갔던 그는, 그곳에서 이민자의 설움을 느끼며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과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그래서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을 처음에는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은 오랫동안 상상해온 ‘미끄럼틀’을 실현할 수 있다는 유혹이었다. 노구치는 예술이 멀리서 바라보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도 타고 놀 수 있을 만큼 친근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며 느끼는 아찔함과 해방감, 차가운 대리석의 감촉이 바로 그의 예술이었다. 그는 어린이들이 작품을 통해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겼다.
노구치는 미끄럼틀을 단순한 조각이 아닌, 예술적 경험을 위한 공간으로 바라보았다. 예술이란 고귀하고 난해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Slide Mantra"라는 제목은 미끄럼틀을 타는 단순한 움직임이 하나의 ‘만트라’가 되어,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놀이와 예술, 명상과 경험의 경계를 허무는 노구치의 철학적 탐구를 잘 반영한다.
노구치에게 놀이터는 아이들이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스스로의 감각과 맞닥뜨리는 예술적 무대였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고, 호기심을 느끼며, 때로는 두려움을 경험한다. 그 모든 감정이 노구치의 작품에 대한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는 단순히 조각가가 아니었다. 공간과 경험을 조각해낸 예술가였다.
노구치의 미끄럼틀을 타는 순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올라갈 때의 긴장, 내려올 때의 해방,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감각들. 그것이 바로 그의 예술이 가진 힘이다. 순간을 느끼게 하고, 그 순간이 지나가도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힘 말이다.
노구치는 나이가 들어서도 활발하게 창의적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날아갔다. 그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듯, 우리도 인생의 굴곡을 타고 내려와, 잠시라도 그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노구치가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예술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아이들이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타고 내려오면 된다고. 그리고 그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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