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olf Belling
루돌프 벨링은 1886년 출생의 독일 출신 조각가로 ‘조각은 좋은 면만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그의 책 ‘조각 형태의 문제점 (The problem of Form in Sculpture)’에서 “조각은 이해하기 쉬워야 하며 관찰자가 그것을 한바퀴 둘러보도록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라고 말했고 그의 이러한 사상은 비평가들 및 후대의 조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나치 정권의 정치적 견해를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의 회원자격을 박탈당했고 많은 작품들이 파손되었다. 그는 독일을 떠나 8개월간 뉴욕에서 작품활동 및 강의를 하며 생활하다 그의 부인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9살 아들 토마스가 위험에 처하자 독일로 돌아와 아들을 살리고 다시 터키의 이스탄불로 이민을 가 그 곳에 30년간 살았다.
1937년부터 그는 이스탄불 순수미술 아카데미의 교수로 재직하였고 1939년에는 그의 아들을 불법으로 베를린에서 터키로 빼냈다. 1942년에 그는 이탈리아계 독일인 욜란다와 두번째 결혼을 했고 1943년에 그의 딸 엘리자베스가 태어났다. 그는 1955년에 독일 연방 공화국 공로 훈장을 받고나서 1956년에 서독의 아카데미에서 부름을 받았고 독일은 외교부를 통해 뉴욕의 있던 조각들을 돌려받았다. 80세가 되던 해 그는 독일로 돌아가 뮌헨 근처의 크릴링에서 거주하다 1972년 6월 뮌헨에서 독일 정부의 화려한 축하와 독일 연방 공화국 공로 훈장과 함께 눈을 감았다. 역사적 격동기 속에서도 조각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유지하고 성취를 이뤄낸 점이 깊은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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